2009년 05월 07일
[책] 용의자 X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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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만 처음부터 띄워놓고 본다면 이만큼 제 입맛대로 줄거리를 미리 유추하기 힘든 제목이있는가 하면, 또 책을 읽고 나서 보자니 이 제목이야말로 내용의 전부라 할 만큼 심플하기도 하다. 우연한 계기에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한 모녀와, 이 살인을 은폐하고자 계획을 짜내는 한 천재, 그리고그와 다른 입장에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자 하는 또 다른 천재의 이야기. 한껏 요약하자면 이것이 스토리의 전부라고도 하겠는데,이들 중 누가 용의자X의 역할을 맡게 될는지에 대해선 굳이 별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틀린 짐작은 않을 터이다.
이 소설은 그 용의자 X, 이시가미의 입장에서 모녀를 도와 사건을 은폐해나가는 과정과 탐정 갈릴레오, 유가와의 입장에서 사건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두 명의 주인공을 번갈아 그려내고 있는 형태를 띄고 있어도 사실 유가와의 과정보다 이시가미의 과정을 그려내는 비중이 디테일과 분량 양쪽으로 우세한 만큼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을 비롯 탐정 역할의 유가와가 등장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라 통칭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쪽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랄 수 있겠다. 뭐 결국은 읽는 독자의 판단에 의해 갈리는 문제지만 말이다.
덕분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딜레마에 빠질법도 한 일이다. 보통 같으면 잘나빠진 탐정이 졸렬한 범인의 두뇌를 비웃듯 명쾌한 트릭의 해석을 곁들여 짠 하고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바라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막상 이 소설은 실질적인 살인자지만 동정할 수밖에 없는 한 모녀와(사실 이 부분은 극적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순수한 연모의 심정으로 그녀들을 지키고자 '헌신'하는 한 남자를 내세우며 내심 그들의 편을 들게끔 한다. 이야기에 약간은 과도하게 몰입해 문장 한 켠에 경찰이라는 두 글자만 보여도 가슴을 졸이고, 이들의 의욕적인 취조공세 따위에는 대놓고 손발이 오그라들며 나라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대답을 할지 끊임없이 유추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찌됐든 이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독자도 어느새 살인자와 협력자의 한 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나마 그들과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감추려 하는지 독자 입장에서 미리 알지 못한다는 점에선 영락없는 추리소설이라 하겠다. 또한 되도록 그들의 편을 든다 해도 최소한의 선은 긋고 독자의 입장으로 하여금 진상을 파헤치고 싶다, 하는 감정을 자극하는 것을 경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분에 철저하다고도 하겠다. 이 사건이 이대로 똑똑한 계략에 의해 묻혀졌으면 하고 바라지만, 어떻게든 그 진상은 캐고 싶다. 이런 이기심 및 이율배반을 적절히 유발함으로써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고, 몰입하면 할 수록 책속의 그들과 깊은 동지감을 느끼고 싶어지는(정작 책속의 그들이 이런 의욕에 반응해줄리도 없건만은) 이 책이 한층 완벽을 기한 점이라 생각된다.
대신 이 책이 선보이는, 읽는내내 그렇게 알아내고 싶었던 은폐 트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만점을 주긴 어렵지 싶다. 물론 트릭의 완성도 자체는 높은 편이라 생각하고 반전도 꽤 의외롭긴 하지만, 어찌보면 너무 복선이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서 상상력이 아니고서야 풀 수 없는 트릭이라고 할까. 하지만 모처럼 '어떻게 죽였는가'를 위주로 잔머리를 굴리는 소설들을 주로 접하던 중 '죽이긴 죽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속여 넘기는가' 라는 쪽으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쓰게끔 한 점과 트릭의 대담한 스케일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개인적으론 백점 만점에 팔십오, 정도.
결론 내릴 겸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일반적인 독자들은 상상도 못할 트릭으로 무장한 추리소설은 많고, 어려운 상황에도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시한부 주인공 설정만큼이나 눈물 쏙 빼는 드라마 위주의 추리소설도 찾아보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추리와 드라마라는 양쪽 모두의 완성도를 일정수준 충족시킨 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때, 그 와중에서도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값이 크게 반영된 이 책이 개중 눈에띄고 추천받을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여담으로 최근 시중에 돌고 있는 책의 띠지(위 사진에 나와있는)에서는 두 남자의 뜨거운 대결이 시작됐느니 읊고 있지만, 영화의 성향이야 어쨌든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두 남자의 대치는 인물들의 성향 탓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차갑다.
# by | 2009/05/07 16:10 | 勇者多樂.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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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일본 추리쪽으로 괜찮은 작품을 소개해주시는군요(뽐뿌?)
수학과 물리의 충돌(?)이라는 이과적인 맛도 꽤나 재밌었고.